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카 쉰들러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 같은 해 9월에 [[폴란드 침공|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뒤 점령하자]] 한밑천 챙겨보려는 목적으로 폴란드로 갔으며, 10월에는 나치 독일로부터 [[법랑]] 용기를 만들고 있던 유대인 소유의 공장을 불하받았다. 이 공장은 점점 확대되어 45,000m² 부지에 8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거대한 군수 공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쉰들러는 [[나치당]] [[친위대]] [[슈츠슈타펠]]로부터 유대인 노동자를 공급받았다. 말하자면 강제 노동의 일환으로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을 차출해 공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쉰들러는 이 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어린이나 여성, 대학생들을 '''숙련된 금속공'''이라 속이고 자신의 공장에 데려와 은밀히 보호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암시장]]을 이용해서 모자라는 물자를 조달하거나 유대인을 우대해 [[뉘른베르크 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게슈타포]]에게 조사를 받았으나 돈, 보석, 예술 작품 등을 뇌물로 바쳐서 무마시켰다. 그는 뇌물로 바친 물품들을 장부에 꼼꼼히 정리해 두었는데, 악명 높은 게슈타포를 매수해야 하는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의 물품을 뇌물로 바쳐 구워삶았다. 1944년에 [[소련군]]의 진군으로 동쪽의 수용소가 해체되자, 많은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쉰들러는 약 1,100여 명에 달하는 유대인의 목록을 작성하고, 자신의 고향인 스비타비 지방에 군수 공장을 세운 다음 이들을 이곳으로 모두 빼돌리는 식으로 약 1,200명을 구해내고, 목록으로 차출했던 여성 유대인 근로자들이 행정 착오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자 이들을 다시 데려오면서 아우슈비츠 쪽에서 약 150명 정도의 장정을 추가로 구출했다. 그러고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모해 가며 약 7개월간 이들을 보호했다. 분명 그는 원래 물질적으로 탐욕스러운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이었고, 나치 독일에 동조한 부패한 기업가였다. 애초에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직접 노동자로 끌어들인 것도 그저 돈을 수월하게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데려오고 난 이후 이들을 점점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더니, 결국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어 가며 나치로부터 보호하기까지 한다. 서서히 그의 행동이 단지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수백만 마르크에 달하던 자신의 재산을 모두 소모해 가며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힘썼다. 어찌보면 속물주의적인 탐욕에서 시작된 행위가 쉰들러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은 계기가 된 셈이라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